2016년 5월 2일 월요일

정당성과 정의에 대해



 경쟁의 절차가 객관적이고 투명해지면 불만이 잠잠해 질까?
미국의 정치철학자 폴 우드러프(Paul Woodruff)는 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에 따르면, 공정한 절차는 되레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경쟁에서 밀린 이들을 위해 ‘엄밀하고 합리적인 잣대’로 평가를 다시 했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그들이 순위에서 밀린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때 공정한 평가는 패배자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일 뿐이다.
가뜩이나 속상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객관적으로 따져보아도 실력 없고 무능합니다.”라고 확인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뒤쳐진 99%가 이를 ‘쿨’하게 받아들일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실패자인 이유를 ‘제도’에서 찾곤 한다. 내가 실력 없어서가 아니라, 입시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늘 이런 ‘변명’이 들리곤 한다. 인사(人事) 시스템이 문제라서 정작 열심히 일한 이들만 찬밥 신세가 되었다는 둥, 엉뚱한 이들이 큰 상(賞)을 받았다는 둥 하는 불평이 이어진다.

 밀려난 99%들은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믿고 싶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 해도 말이다.
‘피해자’가 되는 편이 ‘무능력자’로 낙인 찍히는 것보다 나은 까닭이다. 제도의 희생자일 때는 동정이라도 받지만, 아무 문제도 비리도 없는 경쟁에서 뒤쳤다고 해보라. 그러면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테다.

 폴 우드러프는 우리에게 좀 더 현명해지라고 충고한다. 무엇 때문에 정의(正義)를 세우려 하는가? 공정한 절차를 세워 합리적으로 경쟁하게 하면 갈등이 사라질까? 정의를 올곧게 세웠는데도 사회에 좌절감만 가득하다면, 그 따위 정의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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