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일 월요일

꿈과 고통, 문제의식과 현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수사자를 본 적이 있는가? 제 때에 먹이가 나오고, 암사자가 바로 옆에 있으며, 사냥꾼을 염려할 필요도 없으니, 녀석은 다 가졌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녀석은 왜 저렇게 지루해 보이는가?”

 “고통이라는 도전이 없는 인간의 삶은 특별히 자부심을 느낄만한 것이 못 된다.”

- 김광수, [철학하는 인간]


진로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이다.

무엇을 이루어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아쉬움이 없는 사람은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나를 비참하게 하고 절망감을 안기며 꼭 갖고 싶다는 절절한 바람을 갖게 하는 것, 바로 그 것이 내가 모든 고통을 이겨내며 내 삶을 끌고 가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고통은 대접받아야한다.

고통에도 수준이 있다.
그대의 고통은 어느 수준에 있는가? 그대가 의사가 되고 법조인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 많이 벌고 인정받는 직업이어서 하고 싶을 뿐인가,
아니면 세상의 고통 받고 억울한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하고 싶은가?
이 둘 가운데 누가 제대로 된 의사나 법조인이 될지는 분명해 보인다.



오랫동안 자신을 다지며 꾸준히 노력하게 이끌려면 어찌해야 할까?

“제발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하고 비는 대신,
“제발 나의 문제가 좋은 문제이기를!” 하고 바라라.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때 유명한 연극배우였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의 비극과 공산독재를 경험하면서, ‘위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모든 종류의 독재에 반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굳은 결심은, 그를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해 직장에 매달릴 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싸움에서 목숨을 걸 때, 어느 쪽이 더 사명감있게 다가오는가?
제대로 선택한 진로는 내 안의 ‘위대한 문제의식’이 시들지 않게 한다.
20년이 가도, 30년이 흘러도 변치 않을 그대의 ‘위대한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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